칼럼

<월요단상>- 정영국 내외동포정보센터(KIC) 이사장/정치학박사

Diane 06.24 20:57

<월요 단상 >


 "7사단 공병대대장 최정훈 소령의 위장결혼'"


앞서 살핀바와 같이 박명진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의 원문내용을 전적으로 인용해서 6.25 당시, '7사단 공병대대장 최정훈 소령의 위장결혼식'을 집중, 살피고자 한다.


육군 7사단 공병대대 3중대 부중대장 최종성(그의 증언에 의하면)이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여 부대에 복귀하자 부대가 텅 비었다. 이유는 '공병대대장 최정훈 소령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6월 25일(일) 오전 9시, 서울 운현궁 이었다. 최정훈의 결혼식 때문에 부대의 지휘관들은 전부 그 전날 서울로 갔다. '부대 지휘부는 비었고 사병들은 이미 비상해제와 농번기 휴가로 소수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7사단 공병대대는 북한군의 탱크를 막을 장애물 하나 설치하지 않았었는데 이것 역시도 공병대대장 최정훈의 의도였다'고 했다.


최종성은 '최정훈이 결혼식을 오전 9시에, 그것도 부대에서 먼 서울에서 하여 의도적으로 부대를 비우게 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그는 '통례적으로 오전 9시에 하는 결혼식도 있느냐?'면서 "북괴가 6.25남침을 도발한 그날 서울 운현궁에서 오전 9시에 결혼식을 거행한다는 최 소령은 북괴의 남침지령을 받고 위장결혼식을 각본대로 연출하였다"고 진술한다.


전쟁이 났을 때 7사단 공병대대는 일직 사관만이 남아 있었다. 최종성이 부대에 복귀하였을 때 "최정훈과 대대 작전과장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7사단은 형편없이 궤멸하였다. 


그는 당시 육군수뇌부의 전쟁 직전의 조치들을 두고도 위기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북의 공격을 용이하게 해 주는(치밀하게 조직된 음모)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했다. 


다시말해 "남침의 기회를 제공한 방침"이라고 규정한다, 고 했다(박명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나남신서, 1996, p580에서 재인용).


2019년 6월 24일


내외동포정보센터(KIC)

이사장/정치학박사 정영국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