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요 단상 >-내외동포정보센터(KIC) 이사장/정치학박사 정영국

Diane 07.09 21:55

 "7사단 공병대대장 최정훈소령의 위장결혼"


6.25발발 직전인 '6월 10일에는 후방은 물론 전방을 담당하는 사단장급 지휘관의 전면적인 이동이 있었다'고 했다. 육군본부의 참모들도 전면적으로 변경되었다. 일시에 최고지휘부와 일선지휘부가 바뀐 것이었다.


이 전면이동은 세 가지 점에서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북의 공격 임박의 정보가 누차 빈발하는 미묘한 싯점에서 전면이동이 있었다는 점' 이었다.


다시말해 '북한의 공격 임박 정보가 빈발하는 미묘한 싯점에 군최고지휘부 및 일선 지휘관의 전면 이동이 있었다는 점' 이었다.


다른 하나는 '건군후 최대의 인사이동으로서 전례가 없는 일선 지휘관과 본부참모에 대한 거의 전체의 동시 대이동이었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인사이동은 위기시에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대응방법이었다.


세번째는 '보직과 임지의 배치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떤 고급지휘관은 전혀 모르는 보직을 맡았고 '전투경험이 없는 지휘관이 최전방으로 배치되기도 하였다.'


보직과 임지의 이러한 전격적이고도 전면적인 교체는 공식기록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 시기로 보아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자 '6월의 위기에 대한 대비책으로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불투명한 점'이었다.


이로써 '지휘관들은 임지에 부임하여 자기 부대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쟁을 맞아야 했다.' 육본의 지휘부도 자기 임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 하였다(박명진,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나남신서 1996, p 574에서 인용).


2019년 7월 8일


내외동포정보센터(KIC)

이사장/정치학박사 정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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